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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역사

신라, 발해, 당나라의 삼국관계

by info-lulu 2025. 3. 10.

 

신라와 당나라의 관계: 나당동맹과 갈등의 시작

7세기 중반,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신라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였다. 신라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년)은 당 태종(唐太宗)과 고종(唐高宗)에게 지원을 요청하며 나당동맹(羅唐同盟)을 결성하였다.

 

660년, 신라와 당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으며(660년), 이어서 668년에는 고구려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당나라는 한반도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며 직접 지배하려 했고, 신라는 당의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하였다.

 

이에 따라 신라는 당과의 전면적인 전쟁을 준비하며, 670년부터 나당전쟁(羅唐戰爭)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에서 신라는 당나라를 물리치고 676년에 한반도에서 당군을 완전히 축출하였다. 이를 통해 신라는 한반도 남부를 통일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후 당나라와는 비교적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하였다.

 

신라, 발해, 당나라의 삼국관계

발해의 건국과 당나라와의 관계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유민들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 중심에는 대조영(大祚榮, ?~719년)이 있었다. 대조영은 698년, 동모산(東牟山)에서 발해(渤海)를 건국하며 고구려 계승을 선언하였다.

당나라는 초기에는 발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713년까지 발해를 말갈의 일파로 간주하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발해가 점차 세력을 키우자 당은 이를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하고 713년 "발해군왕(渤海郡王)"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발해와 당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지만, 긴장감이 존재하였다. 발해는 당나라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수도 상경성(上京城)을 장안성을 본뜬 구조로 건설하였다. 또한, 당과의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며 조공을 바쳤지만, 한편으로는 요서 지역에서 당과 대립하며 군사적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신라와 발해의 관계: 대립과 경쟁

신라는 발해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을 주장하는 것은 신라의 한반도 통일 명분을 약화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발해는 신라와 외교적으로 대립하며, 당과도 직접 교류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신라는 발해를 "북쪽의 오랑캐(北狄)"라고 부르며 견제하였고, 발해 역시 신라를 배제한 채 일본, 당나라와 직접 외교를 진행하였다. 특히 발해와 일본 간의 관계는 긴밀했으며, 발해 사신들은 일본을 방문할 때 신라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해로를 이용하였다.

신라와 발해는 무력 충돌보다는 외교적인 대립이 주를 이루었으며, 서로를 견제하는 방식으로 삼국 관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 속에서도 경제적 교류는 지속되었으며, 발해와 신라 사이에서는 간접적인 무역이 이루어졌다.

 

당나라의 삼국 외교 정책과 균형 유지

당나라는 신라와 발해를 모두 포섭하려 하였으며, 이들과 외교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하였다. 당나라의 입장에서 신라는 기존의 동맹국이었고, 발해는 점진적으로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조공국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당은 신라와 발해를 견제하는 전략을 유지하면서도, 발해가 지나치게 성장하는 것을 경계하였다. 특히 발해가 요서 지역에서 당과 충돌을 빚을 때는 군사적 압박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발해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면서 당과의 관계는 점차 우호적으로 변하였다. 발해 왕실에서는 당의 관제를 모방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으며, 양국 간의 교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당은 신라와 발해를 직접 충돌시키지 않도록 조율하며 동아시아의 균형을 유지하려 하였다.

 

삼국 관계의 변화와 역사적 의의

9세기에 접어들면서 삼국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安史之亂, 755~763년) 이후 국력이 쇠퇴하였으며, 이로 인해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도 변화가 생겼다.

신라는 9세기 이후 중앙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내부 혼란이 가중되었으며, 지방 세력이 성장하며 후삼국(후고구려, 후백제, 신라)의 분열로 이어졌다.

 

발해는 926년 거란(契丹)에 의해 멸망하였으며, 이후 발해 유민들은 고려(高麗, 918~1392년)로 편입되었다. 고려는 발해의 유민들을 받아들이며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화하였다.

당나라는 907년 멸망하며 혼란 속에서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에 접어들었으며, 이후 송나라(宋, 960~1279년)가 등장하여 새로운 국제 질서를 형성하였다.

신라, 발해, 당나라의 삼국 관계는 단순한 경쟁 관계가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상호 견제와 협력을 이루며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간 사례였다. 이들의 외교적, 군사적, 문화적 교류는 이후 고려, 송, 요(거란) 등의 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흐름을 결정짓는 요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