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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역사

일본 전국시대(15~16세기)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 과정

by info-lulu 2025. 3. 6.

 

일본 전국시대의 배경과 발발


일본 전국시대(戦国時代, 1467~1603)는 무로마치 막부의 약화로 인해 다이묘(大名)들이 각자 세력을 확장하며 전쟁을 벌인 시기였다. 전국시대의 직접적인 시작점으로 꼽히는 사건은 1467년부터 1477년까지 지속된 오닌의 난(応仁の乱)이다. 이 내전은 쇼군 계승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무너지고 각 지역의 영주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일본은 수많은 다이묘들이 각자의 영지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국시대의 주요 특징은 중앙 권력이 붕괴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지방 세력들이 정권을 두고 다투었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는 농업 생산력이 증가하며 상업이 발달하였고, 군사적으로는 철포(鉄砲)의 도입과 성곽 건축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혼란 속에서 전국을 통일하려는 강력한 지도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등장과 전국 통일의 시작


전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일본을 통일하려는 움직임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6세기 중반 오와리(尾張) 지역의 다이묘로 등장하여, 기습과 전략적 동맹을 통해 빠르게 세력을 확장했다.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桶狭間の戦い)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의 대군을 기습 공격으로 격파하며 명성을 떨쳤다. 이후 그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개혁을 단행했다. 1573년 무로마치 막부를 공식적으로 붕괴시키며 중앙집권화를 추진했고, 1575년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에서는 대량의 철포를 활용하여 다케다 가문의 기병대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1582년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에서 부하였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의 배신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그의 통일 사업은 중단되었다. 하지만 그의 유산은 후계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


오다 노부나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그의 가신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오다 가문의 주요 장군들과 경쟁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1583년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の戦い)에서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를 물리치며 오다 가문의 후계자로 자리 잡았다. 이후 1585년 관백(関白) 직위를 얻으며 정통성을 확보했고, 1590년에는 호조 가문(北条氏)을 무너뜨려 오다 노부나가가 이루지 못한 전국 통일을 완수했다. 그는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다이묘들에게 검지령(刀狩令)을 내려 농민들이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금지했고, 신분제를 명확히 구분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또한 일본을 안정시키기 위해 교통과 경제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도요토미 정권의 권위를 확립하였다.

 

일본 전국시대(15~16세기)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일 과정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외 정책과 임진왜란


전국 통일을 이룬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국력을 대외적으로 확장하려는 야망을 품게 된다. 그는 명나라 정복을 목표로 삼고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壬辰倭乱, 1592~1598)을 일으켰다. 1592년 4월 일본군은 조선을 급습하며 한양(서울)을 빠르게 점령했으나, 조선의 의병과 명나라의 원군이 합세하여 저항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었다. 1597년 다시 정유재란(丁酉再乱)을 일으켰으나, 이순신 장군의 해군 활약과 조선-명 연합군의 방어로 결국 일본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일본군은 완전히 철수하였고, 이는 도요토미 정권의 몰락을 예고하는 신호가 되었다. 그의 대외 정책은 일본 내 정치적 불안을 초래하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부상과 전국시대의 종결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 그의 후계자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아직 어린 나이였고, 이에 따라 일본의 실권은 다이묘들 간의 권력 투쟁으로 이어졌다. 160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에서 서군을 이끌던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를 격파하며 일본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1603년 그는 에도(江戸)에 막부를 열며 일본의 새로운 통치자로 자리 잡았고, 전국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260년 동안 지속되며 일본을 안정된 봉건 체제로 유지하였다. 전국시대는 일본 역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변화의 시기였으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삼대 영걸(三英傑)의 지도력 아래 일본은 점차 중앙집권적 국가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으며,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통한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