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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역사

고려의 대외 관계: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와의 외교 전략

by info-lulu 2025. 3. 6.

고려와 송나라: 문화와 경제 교류를 통한 유대 강화

고려와 송나라는 기본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지속했다. 고려는 송나라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962년 고려 태조는 송나라에 국서를 보내며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이후 고려와 송나라 사이의 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송나라는 선진적인 문물을 가진 국가로 고려는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유교적 정치 이념과 과거제는 고려의 중앙집권 체제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종(981~997) 대에는 송나라의 유교적 정치 체제를 본받아 관리 선발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체제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또한 고려는 송나라의 서적과 도자기, 비단 등을 수입하며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했다. 반대로 고려의 특산물인 인삼, 나전칠기, 종이 등은 송나라로 수출되었으며, 이를 통해 고려는 동아시아 국제 무역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하지만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가 항상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11세기 이후 요나라(거란)와 금나라(여진족)의 부상으로 인해 송나라는 압박을 받았고, 고려 역시 외교적 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군사적으로 독립적인 노선을 유지하고자 했으며, 이는 후에 요나라 및 금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고려와 요나라: 거란의 침입과 고려의 강경 대응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916~1125)는 고려와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다.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으며 요나라를 견제하는 입장이었고, 이는 요나라와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993년 요나라의 소손녕이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의 서희가 외교 협상을 통해 전쟁 없이 강동 6주(현재의 함경남도 일대)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거란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1010년과 1018년에도 고려를 침공했다. 특히 1018년의 전쟁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은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을 크게 격파하며 국가의 독립을 지켰다. 이후 고려는 요나라와 형식적인 사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자주적인 정책을 펼쳤다. 또한, 거란과의 전쟁을 계기로 고려는 국방을 강화하며 군사 체계를 정비했다.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 통해 국가의 독립성을 유지했지만, 한편으로는 요나라와의 관계 개선도 시도했다. 요나라와의 갈등이 점차 완화되면서 양국 간의 경제적 교류도 일부 이루어졌으며, 고려는 동아시아 국제 정세 속에서 생존을 위한 실리적 외교 전략을 지속했다.

 

고려와 금나라: 새로운 강대국의 등장과 외교적 선택

12세기 초 여진족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1115년 금나라를 건국하자, 고려는 새로운 외교적 도전에 직면했다. 고려는 초기에는 여진족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려 했으며, 1107년 윤관이 이끄는 별무반을 통해 여진족을 공격하고 동북 9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진족은 이에 맞서 강력한 반격을 가했고, 고려는 결국 동북 9성을 반환하게 되었다.

1125년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자, 고려는 외교 정책을 조정해야 했다. 금나라는 고려에 사대를 요구했으며, 고려 인종(1122~1146)은 금나라에 신하의 예를 취하며 외교적 타협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고려는 금나라의 침공을 방지할 수 있었으며, 이후 일정한 경제적 교류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고려 내부에서는 금나라에 대한 사대 정책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묘청 등의 서경파는 금나라와 단절하고 독자적인 국가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개경파는 현실적인 외교를 고려해 금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결국, 묘청의 난이 진압되면서 고려는 금나라와의 외교적 유대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고려의 외교 전략: 실리 외교와 균형 유지

고려는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라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실리적 외교 전략을 펼쳤다. 고려는 특정 국가와 일방적인 동맹을 맺기보다는 현실적인 외교 정책을 선택하며 국가의 생존을 도모했다.

고려는 송나라와의 교류를 지속하며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고, 요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군사적 역량을 강화했다. 금나라와는 사대 관계를 맺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다. 이러한 고려의 외교 전략은 강대국 사이에서 작은 국가가 자주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고려는 강대국 간의 갈등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예를 들어, 요나라와 금나라가 대립할 때는 금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금나라가 쇠퇴하는 시기에는 다시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강화했다. 고려의 이러한 외교 전략은 동아시아 국제 관계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려 외교의 역사적 의미와 영향

고려는 동아시아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실리적 외교 전략을 펼치며 국가의 독립을 유지했다.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라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고려는 균형을 유지하며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

고려의 외교 전략은 이후 조선 시대의 외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명나라와 후금(청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외교를 펼쳤으며, 이는 고려의 외교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고려의 외교 전략은 국제 관계 속에서 작은 국가가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고려의 외교 정책은 단순한 군사적 대응이 아니라, 문화적·경제적 교류를 포함한 복합적인 전략이었다. 고려는 송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키고, 요나라와 금나라에 대해서는 신중한 외교적 타협을 시도하며 국가의 생존을 유지했다. 이러한 고려의 외교 전략은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