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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역사

무굴 제국의 쇠퇴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세력 확장

by info-lulu 2025. 3. 3.

무굴 제국의 전성기와 쇠퇴의 시작

무굴 제국(Mughal Empire)은 16세기 초 바부르(Babur)에 의해 인도에 건설된 이슬람 제국으로, 아크바르(Akbar) 대제(1556~1605)의 치세 동안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아크바르는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치며 이슬람과 힌두교의 융합을 도모했고,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확립하며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후 무굴 제국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은 17세기 후반 아우랑제브(Aurangzeb, 재위 1658~1707)의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을 펼치며 힌두교 세력을 억압하였고, 데칸(Deccan) 지방의 마라타(Maratha) 왕국을 비롯한 여러 반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 이로 인해 국고가 고갈되었고,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지방 통치자들의 독립성이 강해졌다. 결국 아우랑제브의 사망 이후, 무굴 제국은 점차 분열과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지역 세력의 성장과 무굴 제국의 약화

아우랑제브 사망 후 무굴 제국의 중앙 통제력이 붕괴되면서, 여러 지역 세력들이 독립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마라타 왕국은 서부 인도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며 무굴 제국의 남부 지배력을 위협하였다.

펀자브 지역에서는 시크교(Sikhism) 세력이 성장하며 무굴 제국에 저항하였고, 벵골(Bengal),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아와드(Awadh) 등지의 총독들은 사실상 독립적인 군주로 행세하며 무굴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지방 분열은 무굴 제국이 더 이상 중앙집권적인 제국으로 기능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시기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안정은 결국 외부 세력의 개입을 초래하였다. 특히 유럽 열강, 그중에서도 영국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는 이러한 혼란을 이용하여 점진적으로 인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플라시 전투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영향력 확대

영국 동인도 회사는 1600년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의 인가를 받아 인도에서 무역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향신료, 면직물, 차 등의 교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다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군사적 개입을 늘려갔다.

영국의 인도 지배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은 1757년의 플라시 전투(Battle of Plassey)였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의 지휘 아래 벵골의 나와브(Nawab) 시라즈 우드 다울라(Siraj ud-Daulah)와 그의 프랑스 동맹군을 격파하였다. 영국은 벵골을 장악한 후 경제적 수탈을 강화하며, 인도의 다른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플라시 전투 이후 영국 동인도 회사는 벵골의 실질적인 통치권을 장악하였으며, 1765년에는 무굴 황제로부터 벵골, 비하르(Bihar), 오리사(Orissa) 지역의 행정권(Diwani)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는 영국이 단순한 무역 세력을 넘어 인도 정치에 적극 개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굴 제국의 쇠퇴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세력 확장

 

마라타 전쟁과 영국의 지배 강화

무굴 제국의 쇠퇴와 함께 인도의 패권을 둘러싼 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떠오른 것은 마라타 왕국이었다. 마라타 연합(Maratha Confederacy)은 18세기 후반까지 인도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며 무굴 황제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그러나 19세기 초 마라타 전쟁(Anglo-Maratha Wars)에서 영국은 마라타 세력을 격파하며 인도에서의 패권을 확고히 하였다. 특히 1818년 제3차 마라타 전쟁에서 영국은 마라타 연합을 완전히 해체시키며, 인도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다.

한편, 영국은 1799년 마이소르(Mysore)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하며, 남인도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또한 1849년 펀자브를 점령하며 시크 제국(Sikh Empire)을 몰락시켰다. 이로써 영국 동인도 회사는 사실상 인도 전역을 장악하며 무굴 제국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무굴 제국의 공식적인 붕괴와 영국의 식민 지배 확립

무굴 제국은 19세기 중반까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있었으며, 실질적인 권력은 영국 동인도 회사가 행사하고 있었다. 결국 1857년, 인도 대반란(Indian Rebellion)이 발발하며 무굴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857년의 대반란(세포이 항쟁, Sepoy Mutiny)은 영국의 식민 통치에 반발한 인도 병사(세포이, Sepoy)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반란이었다. 반란 세력은 마지막 무굴 황제 바하두르 샤 2세(Bahadur Shah II)를 명목상의 지도자로 내세우며 영국에 맞서 싸웠으나, 결국 영국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1858년, 영국 정부는 동인도 회사의 통치권을 공식적으로 박탈하고, 인도를 직접 통치하기 위한 ‘인도 정부법(Government of India Act)’을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무굴 제국의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는 폐위되었으며, 무굴 제국은 공식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인도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으며, 1877년에는 빅토리아 여왕(Victoria)이 ‘인도 황제(Empress of India)’로 즉위하며 본격적인 영국령 인도제국(British Raj)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무굴 제국의 쇠퇴는 내부의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약화, 지역 세력의 성장, 외세의 개입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촉진되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무굴 제국의 쇠퇴와 지방 세력의 분열을 이용하여 점진적으로 인도에서의 지배력을 확대하였으며, 플라시 전투와 마라타 전쟁을 거쳐 인도를 사실상 장악하게 되었다.

결국 1857년 인도 대반란 이후 무굴 제국은 공식적으로 멸망하였고, 영국은 인도를 직접 통치하며 본격적인 식민지 체제를 확립하였다. 무굴 제국의 쇠퇴와 영국 동인도 회사의 부상은 인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는 이후 인도의 정치·경제·사회적 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